미술, 화장실에 가다 | ||||||||||
미술가 - 기획자 1명씩 짝을 이룬 7개팀이 미술기획자 이경복(기획창작공간 산방대표)씨는 6월 초 서울 곳곳에 작업중인 젊은 미술가 7명에게 ‘괴팍한’ 작업 지시를 내렸다. 그 지시 내용은 대략 이러하다. ‘삼백만원을 줄테니 당신 작업실 주변의 주민들과 지역 사회를 위한 미술 작업에 알아서 쓸 것, 단 180만원(이중 30만원은 기획자 몫)은 반드시 임금으로 챙기고, 나머지 120만원으로만 작업할 것, 절대 임금을 작업비로 돌려 쓰지 말 것’. ‘미술로 등긁기’란 제목이 붙은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이렇게 시작됐다. 동시대 미술가의 사회적 쓸모를 300만원이란 소액으로 실험한다? 고개를 갸웃거렸던 작가들은 생애 처음 임금을 받아본다는 뿌듯함(?)에 기꺼이 작업 계획을 꾸렸다. ‘생돈’을 받은 작가의 이름은 강영민 김연태 안중경 양아치 이기일 이호진 정은영씨. 소장기획자 김준기 민병직 오혜주 이병희 이은주 윤태건 최금수씨가 각각 짝을 이뤘다. 작가들이 내놓은 계획서는 7인7색. 김연태·윤태건씨 팀은 작업실이 입주한 방배 3동 삼원 빌딩의 낡은 화장실을 아트 공간으로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안중경·이병희씨 팀은 양재천 보행공간에 대형 개똥 조형물을 설치해 애완견 사랑과 개똥 수거 캠페인을 벌이기로 했고, 이기일·최금수씨 팀은 사당동 국립묘지의 콘크리트 담장 리모델링, 이호진·이은주씨의 ‘뚝방’팀은 우면동 무허가 빈민촌에 쉼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정은영·오혜주씨 팀은 서울 홍대 입구역 버스 정류소에서 승객들에게 아트북을 슬쩍 나눠주는 얼개를 내보였다. 양아치와 김준기씨의 ‘김양’팀은 서울 북촌 지역의 풍문여고생들이 만드는 휴대폰 인터뷰 방송을 통해 열악한 학교 매점 개선작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예정된 작업 마감 시한은 오는 15일. 지난 6월 23일 중곡동 산방에서 모여 의견을 나눈 뒤 각기 흩어져 작업에 들어갔다. 작업과정은 산방 홈페이지(www.outsideart.net)에 실시간으로 보고되었다. #2 엄청 힘들었다. 하지만 재밌었다! 힘들고 좌절하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지금 작업들은 어떤 성과를 냈을까. 2일 기획자 이경복씨, 작가 이호진 안중경 이기일 정은영씨와 작가 김연태씨의 방배동 작업실 건물의 2층 화장실을 찾아가 봤다. 우윳빛으로 칠해진 차분한 실내 분위기, 노랑·빨강·투명 타일이 프레임처럼 거울과 애장품 화폭을 두른 남녀 화장실의 자태는깔끔하다. 마지막으로 드라이 플라워, 찻잔보 등의 입주자 애장품을 모아 붙이고 있는 김씨는 “건물 관리 운영위의 허락을 얻어, 입주자에게 공문을 돌리고 협찬을 요청하는 귀찮은 절차를 거쳤다”고 했다. 처음엔 입주자들이 “왜 돈 들여 이런 일 하느냐”며 슬슬 피했다고 한다. 적은 돈으로 공사 업자에게 애원하는 것도 힘들었다. 600만원이나 됐던 공사비를 200만원으로 줄이고, 입주자들의 푼돈 협찬을 얻어 리모델링을 하자 그는 건물의 유명인사로 떠올랐고, 주차비 내지 않는 특전도 누리게 됐다고 한다. “관리인쪽에서 고맙다며 대청소를 해주고 청소인력을 더 고용하는 것을 보니 재미있었어요. 입주자들의 행동 방식이 바뀐 게 참 신기하기도 하고….” |
오늘 한겨레 기사예요^^* 많이 보시고 많이 알려주세요^^*
| ||||||
#3 고생 좀 할거야! ㅋㅋ…!
300만원 프로젝트의 발신자인 이경복씨는 20년간 바깥 미술 운동에 전념해온 기획자다. 2002년 서울대로변 벽화 보고서 전을 기획하기도 했던 그는 실시간으로 올라온 작업상황을 내내 지켜보면서 작가들 고생 좀 하겠지하고 키득거렸다고 했다. “어려운 숙제를 낸 거죠. 사실 이 프로젝트는 개인적 성과보다 지역사회, 주민들과 미술인들이 부대끼고 작업을 해결하는 과정들을 체험하고 기록으로 남겨 공공미술의 전략 전술을 닦는 거니까요. 지자체, 지역 공동체와 교감만 되면 건축비 1%를 미술장식품으로 사는 현행 법제 말고도 내실 있는 공공미술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봐요. ”
문예진흥원과 기업들 협찬을 받아 성사된 삼백만원 프로젝트는 주택가 등의 작은 벽화 운동을 구상하다 발전시킨 것이라고 한다. 삼백만원으로 알아서 작업 구상하고 알아서 주민들 만나 부대끼는 게 더욱 소중한 체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는 게 그의 말이다.
작가들에게 지급된 180만원은 2002년 민노당에서 도시 근로자 평균 임금액을 책정할 때의 액수다. “작가의 급여 책정 기준을 찾으려 노력했으나 아무리 찾아도 없었어요. 프로젝트 과정에서 정보가 쌓이면 어렴풋하게 작가 급여 기준도 잡히겠죠. 사회에서 어떻게 미술가로 먹고 살까 감냥해보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클 겁니다.”이씨는 이런 소프로젝트가 소소해 보이지만 성과가 쌓이면 미술동네에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4 실패도 성과다!
작가들은 화장실 품평회가 끝난 뒤 삼겹실 집으로 달려갔다. 흥겨운 뒷풀이 시간, 부러운 눈길로 김씨의 화장실을 품평한 다른 작가들은 이어 자신들의 좌절담을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지난달 21일 양재천에 스티로폼 개똥 조형물을 들고 나갔던 안씨는 개똥에 그림 그려넣기와 개똥 수거용 비닐봉투 나눠주기 등을 진행했으나 제작비용을 초과한데다, 작품 이동이 어려워 하루 해프닝으로 작업을 끝냈다. 우면동 무허가촌에 쉼터 건물을 놓으려던 이호진씨는 철제 기둥 등의 자재까지 준비했으나 다른 속셈이 있지않느냐는 일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혀 쉼터 건립을 포기하고, 평상 등 가구 리모델링 쪽으로 틀었다. 이기일씨도 구청쪽에서 2007년 국립묘지 담장을 투명 담장으로 교체할 예정이어서 불허한다는 방침을 듣고, 유흥가 파출소의 화장실 표시판 디자인 쪽으로 계획을 바꿨다고 털어놨다. 진짜 예술과 사회의 만남이 얼마나 어려운지, 얼마나 더 고민하고 겸허해져야 하는지… 이들이 술잔 부딪치면서 낸 결론은 미술이 공공과 만나는 교감의 토대는 오롯이 작가들 체험으로 닦아야할 문제라는 것이었다. 내후년까지 진행할 이 프로젝트가 지향하는 진짜 목적도 그렇다. 산방쪽은 10월초 일반 모니터와 평론가들을 초청해 프로젝트 품평회도 열 예정이다. 지금도 작업은 인터넷과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02)2201-8063. 글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기사등록 : 2005-09-06 오후 07:32:39기사수정 : 2005-09-06 오후 07:38:33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