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종 성인(成人)들이 단 며칠간만이라도 맹인과 귀머거리가 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맹인이 되면 시력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고, 또 귀머거리가 되면 소리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헬렌 켈러


3일 동안 아무 것도 못 보게 된다면                 2002/04/18 오후 7:44

동호회 게시판에 올라온 글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

처음에는 앞을 못보는 장애우가 남긴 글인 줄 알았습니다. 장애우가 남긴 글이라 짐작하고 슬쩍 감상에 젖어들었다가 글을 읽어가면서 저는 마치 옷을 하나도 입지 않고 다른 사람 앞에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 글을 장애우가 직접 쓴 건 아니지만, 장애우가 쓴 글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었고 말하지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의 '3일 동안만 본다면'이라는 책을 소개하는 글이었습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헬렌 켈러가 말하는 3일 동안은 이렇습니다.

'만약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유일한 소망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죽기 전에 꼭 3일 동안만 눈을 뜨고 보는 것이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눈을 뜨는 그 첫순간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을 시켜준 나의 선생님 애니 설리번을 찾아가겠다.

지금까지 그의 특징과 얼굴 모습을 내 손끝으로 만져서 알던 그의 인자한 모습, 그리고 그의 아리따운 몸가짐을 몇 시간이라도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나의 마음 속 깊이 간직해두겠다.

다음엔 나의 친구들을 찾아가 그들의 모습과 웃음을 기억하고, 그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나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무 잎사귀들, 들에 피어있는 예쁜 꽃들과 풀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에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날 이른 새벽에는 먼동이 트는 웅장한 장면을 보고, 아침에는 메트로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오후에는 미술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 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또 하루를 지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길가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을 바라보고, 아침에는 오페라 하우스, 오후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감상하고 그러다 어느덧 저녁이 되면 나는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복판으로 나와서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거리, 쇼윈도 위에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상품들을 보면서 집에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는 이 3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준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기도를 드리고 또다시 영원한 암흑세계로 들어 갈 것이다.'

고등학교 때 점심시간에 잠깐 동안 시각 장애인을 이해한답시고 눈을 감은 채로 막대기 하나를 들고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꿈이 건축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을 생각할 줄 아는 건축을 해야 한답시고 그 상황을 직접 체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검은 암흑 속에서 오르고 내리는 계단 한칸 한칸은 공포에 가까웠고 어디서 부딪힐지 모르는 벽은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데 온갖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습니다.

눈을 감은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정도 온 것도 같아서 갑갑한 마음에 눈을 뜨고 확인한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고 그 시간은 불과 5분도 되지 않았습니다.

시각장애우를 이해한다기보다는 그냥 막상 내 눈이 안 보이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먼저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시각장애로 3일 동안만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그 3일 동안 무엇을 보기 위해 하루하루를 쓸 것인가에 대해서 하루종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시력을 잃어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하루 하루를 다 채울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꿔서 내가 만일 3일 동안 볼 수 없게 된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하루는 어쩌면 피곤한 몸을 쉬게 한다는 명목으로 잠을 자느라고 보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앞이 안 보이니까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일이 잠자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틀째는 오랜만에 소식을 전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볼까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한다고 생각하니 전화번호를 확인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핸드폰에 차곡차곡 입력해둔 전화번호를 필요할 때마다 버튼 몇 번만누르면 상대방과 연결이 되기 때문에 전화기야 어떻게든 찾아서 버튼을 누른다지만 거기까지가 끝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음악을 듣고 하루를 보내는 건 어떨까하고 생각을 해봤습니다. 시디 플레이어에 재생시키는 것도 문제일 테지만 듣고 싶은 음악을 고르는 일 또한 힘들 것 같았습니다.

아무렇게나 음반을 찾아서 듣고 있다 보면 어느 새 또 잠이 들겠지요? 그렇게 해서 또 하루가 지나갈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날, 이제 몇 시간만 버티면 눈을 뜰 수 있으니 눈을 뜨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느라 머리 속은 분주하겠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확인도 해야 하는데 시간에 맞춰서 울어주는 시계가 없다면 초초한 마음에 일분 일분이 애가 타는 시간일 것 같습니다.

3일 동안만 볼 수 있는 사람의 3일과 3일 동안만 볼 수 없는 사람의 3일은 너무도 차이가 많은가요? 비교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눈을 감고도 세상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눈을 뜨고도 세상을 똑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요? 차라리 눈을 감고 싶은 세상을 보는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해서 항상 비교우위를 갖는 것으로 자기만족을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제가 비교한 3일은 우리가 평소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기회 정도는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
Posted by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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