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1월28일 windy의 화요레터]

내가 세상을 보는 렌즈





친구와 ‘영웅’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 속 몇몇 장면에서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합니다. 왼편에 앉은 누군가는 감동에 젖어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데, 뒷편 어느 커플은 ‘이런 황당한 영화가 있냐’는 식의 비웃음을 주변에 전달합니다. 같은 공간 속, 같은 영화, 같은 장면을 두고 말입니다.



사람들의 영화평을 듣다 보면 가끔 비슷한 경우를 봅니다. 평가가 극과 극을 달하는 그런 영화들… 하지만… 다만 영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테죠.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종종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생각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두들 자신의 의견이 다소 객관적이라고 믿곤 합니다. ‘내가 객관적으로 볼 땐 말이지, ~’ 라고 이어지는 문장을 간혹 듣게 되는데, 사실 따지고 보면 ‘내가 볼 때’라는 말은 이미 그 말속에 ‘객관적’이란 표현과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를 담고 있습니다.



인정하든 그렇지 못하든, 우리는 모두 어떤 렌즈를 통해서 사람을 보고 또 세상을 봅니다. 그리고 그 렌즈 자체가 사람이나 세상에 대한 우리의 해석을 만들어 냅니다. 자기 자신의 색이 강하면 강할수록 그 렌즈를 통과하는 세상이 왜곡되어 보이죠. 그리고 우리가 때때로 사람이나 세상이 변했다고 한탄할 때, 변한 것은 사실 다름이 아니라 자신의 렌즈, 아니 그 렌즈의 색인 경우가 많죠.



사람과 사람사이의 갈등은 나의 렌즈나 나의 해석이 다른 사람의 것과 다르다는 것, 다른 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잊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판단을, 나의 해석을 일단 접어두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스폰지처럼 흡수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눈을 감고 감미로운 음악에 마냥 젖어 들 듯, 사람과 현상과 그리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긍정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어떤 아름다움은 분석의 칼을 들이대는 순간 사라집니다. 판단의 잣대를 들이대며 요모조모 따지고 그 의미를 부여하려는 순간 김종삼 시인이 말하던 ‘내용없는 아름다움’이 사라져 버리는 거죠.



뭐든 따지고 들기 좋아하는 윈디 역시, 스스로에게 던진 인생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판단의 잣대 버리기!.

사람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해석해대는 일이 예전만큼 그리 뿌듯하지도 못하거니와, 어쩐지 부질없어 보이기 시작한거죠. 오히려 잣대를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보는 것이 더 즐겁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그 일이, 그렇게 내 안에 파고드는 색안경 하나 버리는 일이 쉽지 않아, 부질없는 갈등 속에 항상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봅니다. ‘진정 비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만이 깨끗하다는 그런 생각조차 비운 사람이다’라고 했는데, 오늘도 순간순간 삐죽삐죽 뻗어나오는 마음의 잣대를 누르느라 분주합니다.







영화를 즐기는 방법 하나를 나름대로 터득했습니다. 간단하던데요.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보고 듣기’ ‘평론가 되기를 포기하기’ ‘이해하려 들지 말고 그냥 느끼기’ ‘내용없는 아름다움도 빨아들이기’ 등등…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영화라는 단어를 ‘사람’과 ‘삶’으로 바꿔도 썩 괜찮을 듯 싶네요. ‘사람을 즐기는 방법’, ‘삶을 즐기는 방법’… 이하 동문…







이제 또 하나의 새해를 맞이하게 됩니다. 각자 잠시 눈에 박힌 렌즈를 꺼내어 뿌~연 이물질을 닦아 보는 건 어떨까요? 그동안 보지 못하던 아름다움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또 한번의 새해 인사와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복조리를 널리 전하면서,

windria의 복(福)순이windy였습니다.
Posted by 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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