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2월4일 하루 지각한 windy의 화요레터]
의존하는법 배우기
(마랩 토론방에 올릴 스터디 모집공고를 작성하느라, 화요레터를 수요일 새벽에야 완성하게 되었네요 ^^;;)
아침에 가끔 생식을 먹을 때가 있습니다. 생식가루를 우유에 타서 먹는데, 평소 몇 초면 되는 일을 업무순서(소위 Work Flow)를 혼동해서 1분이 넘게 저어야 했습니다. 미숫가루를 많이 드신 분들은 알겠지만, 일단 약간의 물로 걸쭉하게 잘 저은 후에 나머지 물을 부어야 가루가 잘 풀리듯이, 우유를 처음에 약간만 넣었어야 하는데 딴생각을 하다가 모조리 부어버린거죠. 열심히 저었는데도 시간만 걸리고 평소처럼 끝내 잘 풀리지 않더군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 모든 일에는 일의 순서가 있고, 또한 순서 내에서도 우선순위가 있는데, 그 순서가 뒤바뀌면 이처럼 몇 배의 노력을 들여도 효과가 거의 없다는것.
2. 그나마 조금 전처럼 순서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계속 소모적인 방식으로 에너지만 쏟아 붓게 된다는 것.
3. 또한, 모처럼 누군가 더 효율적인 방식을 알려주었음에도,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굴러들어온 복을 차내고 우물안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란 것…
30대에 들어섰지만 저는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독립성’을 위해 홀로 칼날을 세우며 싸워 온 20대보다, ‘상호의존성’을 알기 시작한 30대가 더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영웅을 꿈꾸던 20대에는 맛 볼 수 없는 자연스럽고, 자연다운 맛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고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는 생물은 없을 것입니다. 나무가 물의 도움을 받고, 포자식물이 바람이나 곤충, 새 등의 도움을 받으며, 악어새와 악어가 서로 공생하듯이 상호의존하며 사는 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 중 하나일테니까요.
그런데, 인간은 가끔 그러한 자연의 법칙을 놓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연배우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어느 한 인물이 해내는 과업의 양을 저울질 하고, 또 내가 그런 인물이 되겠다고 발버둥 치는 와중에, 여럿이 상생(相生)의 관계로 모였을 때 거대한 힘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사는 거죠. 그리고 그 여럿 중에는 스승과 제자가 따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아이디어의 교류에 있어서 누구든 스승도 되고 동시에 제자도 된다는 사실도…
가끔씩 제 스승님이 되어주는 친구가 며칠 전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자연의 법칙 중에 ‘물은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라는 것이 있죠. 배움도 마찬가지예요. 배우려면 아래에 있어야 하는 거죠. 거만하게 위에 있으려고만 하면 배울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더 클 수 없겠죠^^”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상호의존성을 독립성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이야기 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상호의존성이란 더욱 성숙되고 진보된 개념이다. 만약 내가 육체적으로 상호의존적이라면, 혼자서도 자신있게 일할 능력이 있지만 함께 힘을 합하는 방법을 택한다. 나아가 나는 상대방과 함께 일하는 것이 혼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감정적으로 상호의존적이라면, 내 자신의 중요함과 가치를 인정하지만, 여기에 추가하여 사랑의 필요성, 다른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또 사랑 받아야 할 필요성도 깨닫게 된다.
내가 지적으로 상호의존적이라면, 다른 사람의 가장 좋은 생각을 내 자신의 생각에다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상호의존적인 사람이라면, 내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진정으로 공유하는 기회를 가진다. 나아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무한한 자원과 잠재적 능력에 접근할 수도 있다.
……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혹시 내가 지금 미숫가루에 물을 왕창 부어대고 잘 섞이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누군가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며 알려주고 있는데도, 남의 의견을 받아들임에 인색하여 그저 급하고 무식하게 휘저어 대고만 있지는 않은가?
함께함으로 인한 희열을 경험하는 한 주 되시길 빌며,
windria에서 windy였습니다.
의존하는법 배우기
(마랩 토론방에 올릴 스터디 모집공고를 작성하느라, 화요레터를 수요일 새벽에야 완성하게 되었네요 ^^;;)
아침에 가끔 생식을 먹을 때가 있습니다. 생식가루를 우유에 타서 먹는데, 평소 몇 초면 되는 일을 업무순서(소위 Work Flow)를 혼동해서 1분이 넘게 저어야 했습니다. 미숫가루를 많이 드신 분들은 알겠지만, 일단 약간의 물로 걸쭉하게 잘 저은 후에 나머지 물을 부어야 가루가 잘 풀리듯이, 우유를 처음에 약간만 넣었어야 하는데 딴생각을 하다가 모조리 부어버린거죠. 열심히 저었는데도 시간만 걸리고 평소처럼 끝내 잘 풀리지 않더군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1. 모든 일에는 일의 순서가 있고, 또한 순서 내에서도 우선순위가 있는데, 그 순서가 뒤바뀌면 이처럼 몇 배의 노력을 들여도 효과가 거의 없다는것.
2. 그나마 조금 전처럼 순서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면 다행이겠으나,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계속 소모적인 방식으로 에너지만 쏟아 붓게 된다는 것.
3. 또한, 모처럼 누군가 더 효율적인 방식을 알려주었음에도, 쓸데없는 자존심으로 굴러들어온 복을 차내고 우물안에서 나오지 못한다면,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란 것…
30대에 들어섰지만 저는 다시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독립성’을 위해 홀로 칼날을 세우며 싸워 온 20대보다, ‘상호의존성’을 알기 시작한 30대가 더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영웅을 꿈꾸던 20대에는 맛 볼 수 없는 자연스럽고, 자연다운 맛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고 자연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는 생물은 없을 것입니다. 나무가 물의 도움을 받고, 포자식물이 바람이나 곤충, 새 등의 도움을 받으며, 악어새와 악어가 서로 공생하듯이 상호의존하며 사는 것이 바로 자연의 법칙 중 하나일테니까요.
그런데, 인간은 가끔 그러한 자연의 법칙을 놓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주연배우에게 모든 관심이 집중되고, 어느 한 인물이 해내는 과업의 양을 저울질 하고, 또 내가 그런 인물이 되겠다고 발버둥 치는 와중에, 여럿이 상생(相生)의 관계로 모였을 때 거대한 힘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잊고 사는 거죠. 그리고 그 여럿 중에는 스승과 제자가 따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아이디어의 교류에 있어서 누구든 스승도 되고 동시에 제자도 된다는 사실도…
가끔씩 제 스승님이 되어주는 친구가 며칠 전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자연의 법칙 중에 ‘물은 항상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라는 것이 있죠. 배움도 마찬가지예요. 배우려면 아래에 있어야 하는 거죠. 거만하게 위에 있으려고만 하면 배울 수 없게 되고, 그렇게 되면 더 클 수 없겠죠^^”
성공한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서, 상호의존성을 독립성보다 더 높은 차원으로 이야기 하는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
상호의존성이란 더욱 성숙되고 진보된 개념이다. 만약 내가 육체적으로 상호의존적이라면, 혼자서도 자신있게 일할 능력이 있지만 함께 힘을 합하는 방법을 택한다. 나아가 나는 상대방과 함께 일하는 것이 혼자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감정적으로 상호의존적이라면, 내 자신의 중요함과 가치를 인정하지만, 여기에 추가하여 사랑의 필요성, 다른사람에게 사랑을 주고 또 사랑 받아야 할 필요성도 깨닫게 된다.
내가 지적으로 상호의존적이라면, 다른 사람의 가장 좋은 생각을 내 자신의 생각에다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상호의존적인 사람이라면, 내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진정으로 공유하는 기회를 가진다. 나아가 나는 다른 사람들이 가진 무한한 자원과 잠재적 능력에 접근할 수도 있다.
……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혹시 내가 지금 미숫가루에 물을 왕창 부어대고 잘 섞이지 않는다고 투덜대고 있지는 않은가? 혹시 누군가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며 알려주고 있는데도, 남의 의견을 받아들임에 인색하여 그저 급하고 무식하게 휘저어 대고만 있지는 않은가?
함께함으로 인한 희열을 경험하는 한 주 되시길 빌며,
windria에서 windy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