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석아. 이렇게 너의 이름을 불러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있었니?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뉴스를 보다가 나는 엉뚱하게도 너를 떠올렸단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너무도 슬퍼하는 사람들을 보며 순간 너를 잃었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던 것 같아. 어쩌면 내가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대구 사람이 너뿐이어서인지도 모르지. 네 고향이 대구잖아.



나? 나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단다. ‘누군가’라 할 수 있는 누군가를 잃고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더구나.







하지만 그 폭풍 같던 마음도 언제부터인지 잠잠해졌고, 참을 수 없던 일상도 능숙하게 되풀이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잊기 위해 취하거나 떠나는 일도 없어졌으니 말이야. 나의 삶은 타인들의 눈에는 아주 깔끔히 포장된 것으로 보일 터이고, 서로 뒤엉켜 있던 사람들은 모두 제 갈 길을 떠났고, 이제 나는 나의 작은 범주에서 만족하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얼마 전 아내, 아이와 함께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너의 노래 ‘서른 즈음에’가 흘러나오더구나. 이제는 너의 노래를 들어도 그때처럼 숨이 막힐 듯한 슬픔이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념들 혹은 의문들은 없어졌단다. 그저 녀석이 살아 있었으면 ‘마흔 즈음에’라는 노래를 불렀을까 하면서 피식 웃으며 세월을 느낄 뿐이지….





그런데 “아빠, 이 노래 아빠 친구가 부른 거죠?” 하고 아이가 제법 진지하게 묻더구나. 내가 “그래, 너 그걸 어떻게 알았니? 이 아저씨 노래 잘 하시지?” 하며 대견해 하자 아이는 우쭐하며, “전 그런 것 다 알아요! 이 아저씨가 아빠보다 훨씬 노래를 더 잘 하잖아요!?” 하더군. 그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적어도 아들만은 아빠가 더 잘 한다고 생각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니니?





“근데요 아빠, 저는 이 아저씨보다 노래를 훨씬 더 잘 해요!”라는 아이의 말에 나는 짓궂게 웃으며 “그래? 어디 한 번 해봐!?”라고 아이에게 자신을 증명해 보이라고 요구했지. 아이는 몇 번 목청을 가다듬더니 차 안에서 일어나 율동까지 곁들여 가며 만화 ‘라이언 킹’에서 나오는 ‘티몬과 품바’가 하는 노래를 시작했단다. “하쿠마나타다! 끝내주는 말! 욕심 버리면 즐거워요~~~. 어때요? 정말 잘 하죠!?”





나는 ‘그래, 욕심을 버리고 즐겁게 살아야지’라고 생각하며 너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었지. 너는 우리 아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저 세상으로 가버렸고, 아이는 아빠의 가장 친했던 친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





너와 그룹 ‘동물원’ 친구들과 함께 떠났었던 그 많은 여행들, 치기 어린 사고들, 술에 취해가며 나누었던 그 많은 이야기들…, 나는 점점 나만의 생각 속으로 잠겨들었고,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아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더구나. 나는 내가 마치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의 송광호인양 “광석이는 왜 그렇게 빨리 죽었지?”라는 대사를 아이에게 읊었지. 물론 대답을 바란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미디어는 항상 괴짜나 절명한 천재들을 원하고, 어쩌다 보니 너도 그들이 가끔 꺼내어 놓는 메뉴가 되었더구나. 사람들은 너의 짧고 뜨거웠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또 그래서 나의 친구가 사람들에게서 잊혀지지 않고 기억되는 것이 더러는 고맙기도 하지만, 나는 네가 기억되기보다는 내 옆에 있었으면 한단다. 나를 이해해 주고 좋아해 주었던 친구가 그리우니까…. 그런 친구는 흔치 않거든. 나 역시 너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었었니?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 괴롭단다….





어쩌면…, 네가 우리와 함께 나이 들고 있었다면, 사람들은 너에 대해 시큰둥하게 되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우린 예전처럼 웃고 떠들고 취하고 서로를 부둥켜안을 수 있으련만…. 또 똑같은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향할 때면 가끔 너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한 잔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때가 있단다. 너도 그러하니?





〈김창기/가수·정신과 전문의〉
Posted by 이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