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ster Ooguay says,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but today is a gift.
That is why it is called the present."
Master Ooguay says, "You just need to believe."
Master Ooguay says, "You just need to belie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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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일부분을 처음 읽게된 것은 고등학교 때 인것으로 기억한다. 수능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나에게는 의무적인(?) 책읽기가 강조되었다. 천천히 자세히 읽기 보다는, 누구 누구가 꼭 읽어야할 소설이나, 꼭 읽어야 할 사회과학의 명저.. 이런 식으로 꼭 읽기를 권하는 책들로 넘쳐났던것 같다.
언어영역 문제집의 지문을 통해서 처음 접했던 이 책의 일부분은 많은 의문을 갖게 했던것 같다. 하지만 그 때는 그 수수께끼들에 대해서 편하게 알아갈 마음의 여유가 부족했다. 풀리지 않은 탓이리라.
이 책에서 마빈헤리스가 설명하는 수수께끼를 설명하는 기초에는 '문화유물론'이 자리하고 있다. 한 지역의 문화적 전통에 변화를 일으키는 주요한 힘은, 인간이 생태계 안에서 생존함에 따라 그에게 절대적으로 주어지는 생물학적인 강제이며 특히 고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는 생물학적 강제와 인구증가를 조절해야 한다는 생물학적 강제가 무엇보다 중요한 힘이라는 것이다. 먹이 찾기의 최적화 이론이라고 자신이 스스로 고쳐 부른 이 이론은 사냥꾼이나 채집꾼이 수확할 것이라는 것이다.
먹이를 찾는 사람은 먹이를 찾는 행동의 전체 효율이 증가될 때에만 새로운 품목을 더한다는
때문에 특정한 먹이가 식탁에 오르느냐 하는것은 그 음식이 귀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식량생산의 전체적인 효율에 대한 기여도 때문인것이다. 이것으로 곤충을 먹는 사람들이나
그가 연구한 바는 이제까지의 역사라면 우리가 사는 지금의 먹거리는 어떠한가? 그는 지금의 우리가 점점 더 팔기 좋은 것이 먹기 좋은 것이 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또,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해로운 식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그는 더 나은 것을 먹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식생활이 변화하는 실제적인
누군가 그랬다. 젊음은 컴컴한 터널 그 한 가운데 있는 것이라고. 내가 봤을 때 그 터널의 끝을 이미 지나온것 같은 사람들, 그 들이 이야기하는 터널 속의 이 책을 읽은 나는 그 빛을 보았을까? ^ ^ 언제나 처럼 다시 확인한것은 자신의 목소리, 자신만의 길이 필요하다는 변하지 않는 그 무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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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 오로지 당당하게 살고 싶었다. 그 맑은 눈에 어른들이 당당하지 않게 보여, 그들처럼은 살지 않으려 했다. 중학교 1학년 때인가,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는 작문 숙제에 나는 선생 아닌 다른 것은 무엇이라도 좋다고 썼다가 심한 꾸중을 들었다. 선생인 아버지와 친척들, 그리고 학교 선생들에 대한 반항 탓이었다. 그러나 나도 선생이 되었고, 나의 선생들처럼 당당하게 살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젊은 벗에게 말하고 싶다. 당당하게 살아라!
그 책의 마흔 네번째 장에서.. 창조란 꼬리를 물고 새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엘제아르 부피에는 그런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주 단순하게 자신이 할 일을 고집스럽게 해나갈 뿐이었다.
신들도 사랑의 문제는 쉽게 해결하지 못했다. 그리고 '달리지 않으면 넘어진다.'
그대가 무엇을 따라가는지 모두 궁금해하니 그대, 이 실이 무엇인지 설명해야겠네.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이 실이 보이지 않아,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아도 이걸 잡고 있는 한, 길 잃을 염려는 없지. 슬픈 일들은 일어나게 마련이어서 사람들은 다치기도 하고 죽어가기도 한다. 그대 역시 고통 속에서 나이를 먹어가겠지. 세월이 펼치는 것은 그대도 막을 수 없으니 오로지 실만은 꼭 붙잡되, 놓치지 말아야 한다.
__ 형은 나에게 신화를 공부해 보는게 어떻겠냐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어릴적 만화을 통해서 만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이야기 한 토막 토막들은 좀 처럼 이해 할 수 없는 부분들 투성이였다. 모두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고개 한 번 돌린것이 큰 잘못으로 느껴지지도 않았고~ 접해도 그 안의 이야기 까지 읽어내는 일은 쉬운게 아닌듯 하다. 그리스인에게 시내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그의 대답은 짤막했다. 어젯밤 조한혜정님은 경계인을 이야기 했다. 당당히 경계에 설 것을... 그리고 황석영님은 소통 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 말했다.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윤기님은 자신의 인생을 장지오노를 만나기전과 만난 후로 나눌 수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또 하나의 시를 직접 낭송했는데, 시를 읽기 전에 몇 년 전에 그 시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읽다가 눈물이 나와서 채 읽지 못했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역시 눈물과 함께 시를 읽어 내려갔다. 나무를 찍다가 -리진- 그는 난생 처음 한 아름 거의 되는 나무를 찍어 눕혔는데 그 줄기 가로타고 땀을 들이며 별 궁리없이 송진 냄새 끈끈한 그루터기의 해돌이를 세었더니 쓰러진 가문비와 그는 공교롭게도 동갑이었다 한 나이였다 누가 심었을까 이 나무는? 혹은 저절로 자랐을까? 자라오며 이 나무는 무엇을 보았을까? 무엇을 하였을까? 얼마나 더 자랐을까 이 나무는? … 꼬리 물고 떠오른 궁리궁리는 마침내 그의 가슴속에서 소리 없는 외침으로 터져 나왔다. 나무를 심자! 그 외침 속에 그는 자기도 몰래 삶에 대한 자기의 모든 사랑 모든 애수를 부어 넣었다. 자기가 심지 않은 나무를 찍어 쓰듯이 반생도 더 살아 오지 않았는지 갈피없이 더듬으면서 소리없이 거듭 외쳤다. 나무를 심자!
지하철에서 함께 하기에는 힘든 책인것 같습니다. 정신을 집중해서 문장을 따라가지 않으면 방향을 쉽게 읽어 버리고 다시 처음 부터 읽어야 했습니다. 철학이라는 것이 뜬구름 잡는 않으면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저 위에 있는 것인것 같습니다.
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두번 이고 세번이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듯 했다. 탈고 하면 제목을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도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와 사람부터 그 다음 그 다음 순서로 마주했다.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그들은 이 책에서 너무나 다르게 다가왔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 가운데 내 생각의 방향도 조금은 수정이 되었다.
자신의 생각을 또박또박 분명하게 적어 내려 갈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부러운 능력 중에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안철수씨를 한 회사의 ceo로 생각을 하거나, 성공을 이룬 하나의 모델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나 보다 먼저 인생을 살아온 선배로써, 나 보다 먼저 사회에 발을 디딘 사회인으로써, 내가 해야 할 고민을 먼저한 경험자로써 하는 이야기에 귀기울였습니다. 어쩌면 '희망의 증거'를 찾고 싶은 마음에 해가 넘어가는 시간에 혼자 집에서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면서 책장을 넘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을 보면서 책 안에 내용도 좀 적어두고 해야할 것 같은데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자리는 또 다른 곳이라. 그져 한 번 읽어 보기를 권하기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길잡이가 되어 주는 책이 또 한권 있는데 'delete'라는 책을 주위에서 아주 잘 읽었다고 하네요. ‘나’가 있고서야 타자가 있기에 그러하다. 개념적으로 말해 ‘나’란 주체(성)이며 ‘나’ 이외의 모든 것은 객체(타자)일 뿐이다. 주체/객체(대상)의 선명한 도식이 세계 인식의 기초이다. 이를 두고 주어 중심주의(형이상학)라 이른다. 이 객체인 타자의 단순한 형식이 ‘너’임에 주목할 것이다. <꽃>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나/너, 주체/객체의 제일 단순한 도식이 아닐 수 없다. ‘쉽다’는 이 단순성에서 왔다.
지은이가 동양 고전에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품고 있는 세계관이 서양의 존재론적 세계관에 대립하는 관계론적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존재론은 개별적 존재를 세계의 기본단위로 인식하고 그 개별적 존재에 실체성을 부여하는 것인데, 그 존재론은 필연적으로 개별 존재의 자기 강화를 동반하며, 그것이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로 정치적으로는 패권주의로 나타나게 된다. 이 존재론의 폭력성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동양의 관계론에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관계론이란 개별적 존재가 존재의 궁극적 형식이 아니라는 세계관을 승인하는 것이자 세계의 모든 존재는 관계망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 사유체계다. 그 사유체계 안에서 거론되는 인간은 관계로서의 인간이다. 인간은 사람 사이의 존재일뿐더러, 천-지-인이라는 삼재 속의 존재다. 거기에서 조화와 균형의 원리가 나온다. 《TV, 책을 말하다》가 선정한 '2004, 올해의 책'
1. 시간과 공간의 문화사 (스티븐 컨, 휴머니스트) 2.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 부키) 3. 헌법의 풍경 (김두식, 교양인) 4. 책문, 시대의 물음에 답하라 (김태완, 소나무) 5. 사쿠라가 지다 젊음도 지다 (오우누키 에미코, 모멘토) 6. 학교와 계급재생산 (폴 윌리스, 이매진) 7. 현의 노래 (김훈, 생각의 나무) 8. 정본 윤동주 전집 (윤동주 홍장학(편), 문학과지성사) 9. 거의 모든 것의 역사 (빌 브라이슨, 까치) 10. 남극탐험의 꿈 (장순근, 사이언스 북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