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연구실이 있는 장충동에는 찌개집이 하나 있다.
열 가지나 되는 찌개메뉴를 보고 아줌마에게 물었다. 어느 것이 맛있느냐고...그랬더니 다 맛있어요...그랬다. 다 맛있다는 건 다 맛없다는 것과 같다. 고심하여 골라 먹은 찌개는 역시 맛이 없었다.
잘되는 식당을 보라. 맛있는 식당을 보라. 그런 식당은 대개 한 가지 음식을 잘하는 곳이다. 평양냉면집이나 명동칼국수, 삼청동수제비, 춘천막국수...
글도 마찬가지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를 분명히 정해놓고 그 한 가지 테마에 집중하여 글을 쓰는 것이 좋은 글의 첫 번째 조건이다. 대개 우리는 무엇을 쓸까 즉 "What to say?"보다 어떻게 쓸까 즉 "How to say?"에 신경쓰다 보니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첫 번째 관문을 지나치고 마는 것이다.
전에 히트쳤던 광고 카피 하나를 보자. 레간자라는 자동차는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카피로 인구에 회자되었다.(사람 입에 오르내렸다 해도 되는 걸 人口에 膾炙되었다라고 하는 것은 How to say? 에 해당되는 테크닉의 문제이다. 이는 나중에 다시 언급한다)
이 자동차는 여러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고 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리라. What to say?를 뭘로 할까 무척 고민했을 것이다. 결국 한 가지 약속만 이야기했다. 조용하고 강한 차라는 사실을 ‘소리없이 강하다’라고. 강렬하게! 독자들의 입맛에 맞게!
이를 SINGLE MINDED PROPOSITION이라고 한다. 독자들의 입장에서 말하는 한 가지 분명한 약속...이를 줄여서 흔히 SMP 라고 한다, 글을 쓰기 전에 SMP를 한번 외치기 바란다. 그러면 비빔밥 같은 글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 아닌가?
여러 가지 장점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한 가지 특징을 강조하는 것이 자신을 알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연애편지나 자기소개서를 쓸 때도 그렇다. 상대방에게 어필하는 한 가지 사실에 집중하여 연애편지를 써라. 자신의 한 가지 장점을 강조하여 자기소개서를 써라. 그래야 성공한다.
내가 카피라이터이다 보니 아무래도 카피나 광고 또는 마케팅을 예로 많이 들 수 밖에 없다, 사실 카피란 것은 우리 생활 속의 말이다. 늘 주고받는 우리의 말이 바로 카피다. 카피는 가장 함축적이고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이기 때문에 카피 또는 생활 속의 말을 예로 드는 것을 양해해주길 바란다.(양해란 말은 참 오묘하다^^ 양해해달라고 했는데 상대방이 거절하면 그 사람이 오히려 잘못인 것처럼 느껴지게 하는 단어잖아!)
마지막으로 성년의 날을 맞아 쓴 일본 어느 작가의 글을 소개한다. 인생가면허라는 심플한 테마로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준 글이다. 산토리 술 광고인 이 글에서는 몇 가지 당부를 하고 있지만 결국은 가면허라는 한 가지 테마에 집중되어 있다. 글의 알맹이가 있는 것이다. 알,맹,이!
[人生假免許]
스무 살이 된 청년 제군!
오늘부터 술을 마실 수 있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제군은 오늘부터 술을 마시는데 대하여 공부하는
자격을 얻은 것뿐인 假免許인 것이다.
첫째로 하고 싶은 말은 우울한 기분으로 마시지는 말아달라는 것이다.
술이 고민을 덜어준다는 건 헛된 소리다.
고민이 있으면 자신이 극복하라.
슬픈 술이 되어서는 결코 안되기 때문이다.
다음, 술을 마신다는 것은 분수를 알라는 것으로 생각하라.
그렇게 하면 실수가 없다.
셋째, 술 마시고 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
제군은 언제나 테스트 받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내 자신, 실은 아직 假免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군!
인생은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아달라.
성년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